2015년 3월 5일 목요일

까르띠에 [Cartier] _화수분주얼리디자인공예학원

 

1. 브랜드 정의 및 기원

까르띠에(Cartier)는 주얼리를 비롯해 향수, 시계, 필기구, 안경, 스카프 등을 제작 · 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이다. 세공기술자인 루이 프랑스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는 1847년 그의 스승이었던 아돌프 피카르(Adolphe Picard)의 아틀리에(Atelier, 작은 공방)를 인수했고, 자신의 성()을 따 ‘메종 까르띠에(Maison Cartier)’로 변경했다.

1850년대 까르띠에는 섬세한 세공을 바탕으로 화려한 주얼리 라인을 선보여 프랑스 사교계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후 가업을 물려받은 까르띠에 가의 형제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넓혔다. 까르띠에는1964년까지 가족 경영 체제로 유지되다가 1993년 방돔 럭셔리 그룹(Vendome Luxury Group)에 합병되었고, 1997년 리치몬드 그룹(Compagnie Financière Richemont S.A.)이 방돔 럭셔리 그룹을 인수하면서 리치몬드 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다.

2. 브랜드 탄생 및 설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1819년 프랑스 파리(Paris)에서 화약통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1830년대 중반 파리 몽토르겨이(Montorgueli)가 29번지에 위치한 보석 세공자 아돌프 피카르(Adolphe Picard)의 아틀리에에서 견습생활을 시작했다. 29살이 되던 1847년에 아돌프 피카르가 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그의 스승이 운영하던 아틀리에를 인수했고, 자신의 성()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했다. 또한 자신의 이름 앞 글자인 L과 C로 둘러싸인 하트와 마름모꼴 문양을 자신의 홀 마크(Hall-mark)로 제작해 프랑스 상업등기소에 등록했다. 이것이 ‘까르띠에’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설립자 루이 프랑수와 까르띠에(1819~1904)
 

3. 까르띠에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까르띠에의 소재 혁신: 플래티넘 도입


1890년대 후반부터 루이 까르띠에는 최초로 주얼리에 플래티넘(Platinum, 백금)을 사용했다. 이전까지 주얼리의 제작에는 주로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이 쓰였다. 금과 은은 비교적 유연한 편이지만 플래티넘에 비해 밀도가 낮아 쉽게 구부러지며, 변색과 마모가 쉬워 흠집이 잘 나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플래티넘은 무게가 가벼워 착용하기 간편했고 밀도가 높고 단단해 원석을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다. 플래티넘은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니켈(Nickel), 이리듐(Iridium) 등과 합금해 사용되기도 한다.

플래티넘은 무엇보다 전성(압력을 가하면 얇게 퍼지는 성질)과 연성(늘어나는 성질)이 강한 특징이 있어서 아주 얇은 두께로 길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약 28그램의 플래티넘은 43킬로미터 길이의 실처럼 변형이 가능하다. 까르띠에는 플래티넘의 이러한 특징을 활용해 레이스 처럼 표현한 나뭇잎, 월계관 및 왕관 등의 세밀하고 섬세한 장식이 적용된 신고전주의(Néo-Classicisme) 스타일의 주얼리를 제작했다. 까르띠에의 정교한 세팅은 당시 전 세계 왕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 플래티넘은 다양한 주얼리 브랜드에 보편화 되었다.
 
      1906년 플래티넘을 활용해 제작한 코사지 장식                                             1910년 플래티넘을 활용해 제작한 왕관
 
플래티넘을 사용한 까르띠에의 제품 중에는 1928년 당시 ‘파티알라의 마하라자(Maharaja of Patiala, 산스크리트어로 파티알라 지역의 대왕이라는 뜻)인 ‘부핀다르 싱(Bhupinder Singh)’의 요청으로 제작된 ‘파티알라의 마하라자의 의식용 목걸이’가 유명하다. 부핀다르 싱은 188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견된 439.86 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입한 후 자신이 가진 희귀 원석들을 가지고 루이 까르띠에를 찾아가 의식용 목걸이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목걸이는 다아이몬드로 장식된 5줄의 플래티넘 체인에 234,65 캐럿(Carat, 보석의 질량 단위로 1캐럿은 0.2g)의 옐로 다이아몬드가 달려있었다. 이 목걸이는 총 2천 9백 30개의 다이아몬드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약 1천 캐럿에 해당한다고 한다.
 

                                                    1928년 까르띠에가 제작한 ‘파티알라의 마하라자의 의식용 목걸이’
 

2) 까르띠에의 시그니처 아이콘: 팬더(Panthère) 장식

1914년 루이 까르띠에는 ‘팬더’ 무늬를 모티브로 한 여성용 손목시계를 출시했다. 팬더는 프랑스어로 표범 혹은 사나운 여자를 뜻하며, 당시 루이 까르띠에의 연인이었던 쟌느 투생의 애칭이었다. 이 시계는 바젤과 체인부분을 다이아몬드와 검은 오닉스로 장식해 표범의 얼룩덜룩한 무늬를 구현했다. 루이 까르띠에는 쟌느 투생에게 보석에 대한 지식과 세팅기술 등을 전수했고, 까르띠에의 주얼리 디자이너였던 에드몬드 포레(Edmond Forêt), 샤를 쟈코(Charles Jacquot), 제하드 데수쉬(Gérard Desouches) 등에게 요청해 그녀를 조수로 쓰게 했다.

1933년 쟌느 투생은 도제 기간을 끝낸 후 까르띠에의 주얼리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이후 인도, 극동 아시아, 페르시아(Persia, 현재의 이란)등지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까르띠에 주얼리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그녀는 주로 호화롭고 기하학적인 아르 데코 스타일의 디자인이였던 까르띠에 주얼리 디자인을 구상학적 디자인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애칭인 팬더를 모티브로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를 선보였다.
   
                  

까르띠에의 팬더 주얼리 제작과정
쟌느 투생이 제작한 팬더 주얼리 중에는 1949년 까르띠에 주얼리의 팬이었던 윈저 공작부인(Duchess of Windsor)을 위해 제작된 표범 브로치가 가장 유명하다. 이 브로치는 카보숑 커트(Cabochon Cut, 보석을 잘라내지 않고 구형()이나 타원체의 산 모양으로 연마한 것)를 한 152.35 캐럿의 사파이어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팬더가 앉아있는 형태로 당시 언론에서 ‘주얼리의 원자폭탄(Atomic Bomb of Jewelry)’이라고 불렀다.
                                    1949년 쟌느 투생이 윈저 공작부인을 위해 제작한 표범 브로치

팬더 모티브로 한 주얼리는 현재 ‘팬더 드 까르띠에(Panthère de Cartier)’ 컬렉션에서 반지, 목걸이, 팔찌, 귀걸이 브로치 등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까르띠에 광고에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3) 까르띠에의 세공기술: 인비저블 세팅(Invisible Setting)

주얼리에서 세팅은 금속 바디에 보석을 물리는 작업인데, 금속 발물림을 만들어 보석의 바깥쪽에서 보석을 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1933년 까르띠에가 고안한 인비저블 세팅의 경우 보석 안쪽으로 발물림의 두께만큼 깎아 집어 넣은 것으로 옆에 물린 금속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보석의 이음새가 보이지 않아 원석의 아름다움이 더욱 극대화된다고 한다. 까르띠에는 이 기술로 특허를 받았으며 이후 다양한 주얼리 브랜드에서 금속 발물림이 보이지 않는 세팅을 활용하고 있다.
 
                                         보석의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 ‘인비저블 세팅’
 
 
 
4. 까르띠에의 대표 상품 라인
 

1) Trinity de Cartier(트리니티 드 까르띠에)

트리니티 드 까르띠에는 1924년 루이 까르띠에가 제작한 주얼리 컬렉션으로 3개의 고리가 하나로 연결된 형태이다. 트리니티(Trinity)는 3개가 하나로 된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시인인 장 콕토는 토성(Saturn)의 고리를 형상화한 반지를 만들어달라고 친구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요청을 했고, 루이 까르띠에는 서양 문명에서 성스러움,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 3을 세 개의 링으로 표현해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세 개의 링을 하나로 엮었을 때 색이 어울려 보이도록 각각의 링을 옐로 골드,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로 제작했고, 여기서 옐로 골드는 신의(Fidelity), 화이트 골드는 우정(Friendship), 핑크 골드는 사랑(Love)을 상징했다. 같은 해 이 디자인을 적용해 팔찌가 제작되었고, 트리니티 컬렉션인 ‘트리니티 드 까르띠에’가 시작되었다. 트리니티 드 까르띠에는 반지, 팔찌, 펜던트, 귀걸이 등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까르띠에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루이 까르띠에의 친구이자 프랑스의 유명 시인인 장 콕토 장 콕토를 위해 루이 까르띠에가 디자인한 칼

장 콕토는 루이 까르띠에에게 받은 트리니티 링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해 항상 약지에 착용했다고 한다. 이후 루이 까르띠에와 장 콕토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루이 까르띠에는 1955년 장 콕토가 프랑스의 유명 학술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종신회원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권위있는 학술단체)’의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장 콕토를 위한 칼을 제작했다. 칼은 장 콕토의 희곡과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그리스 신화의 인물 ‘오르페우스(Orpheus)’의 옆모습을 본 딴 디자인으로, 칼자루는 가는 실 느낌으로 금을 꼬아 만들었으며, 칼자루의 끝부분은 2.84캐럿 에메랄드와 두 개의 루비로 장식된 하프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트리니티 링은 장 콕토가 착용해 파리 상류사회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2010년 까르띠에는 장 콕토가 죽기 전에 살던 집을 파리 근교로 이전하는 것을 지원했고, 장 콕토를 기념해 새로운 트리니티 드 까르띠에를 출시했다.

이때 발표된 ‘트리니티 라 벨(Trinity la Belle)’은 장 콕토가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던 두 개의 트리니티 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버전으로, 화이트 골드 링을 제외한 두 개의 링이 각각 두 갈래, 세 갈래로 세공되어 있어 착용했을 때 마치 6개의 링이 엮인 것처럼 보인다. 이 중 화이트 골드 링에는 까르띠에 로고와 다이아몬드 별이 새겨져 있다. 이 별은 장 콕토의 사인에 항상 등장하던 별을 상징한다. ‘트리니티 소바지(Trinity Sauvages)’는 화이트 골드 링에는 다이아몬드를 세팅했고, 옐로 골드 링에는 검은 색으로 표범 무늬를 표현했다. 핑크 골드 링에는 까르띠에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팔찌와 펜던트로도 제작되었다.



 
세 개의 고리가 하나로 엮인 것이              ‘트리트리니티 라 벨                                ‘트리니티 소바지
특징인 트리니티 링                                      (Trinity la belle)’                                      (Trinity Sauvages)’

 

3) 러브(LΘVE)

러브는 1970년 까르띠에의 주얼리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Aldo Cipullo)가 처음 제작한 팔찌에서 시작된 주얼리 컬렉션이다. 알도 치풀러는 중세 유럽 시기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채운 정조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러브 팔찌를 고안했다. 러브 팔찌는 타원형에 나사 2개가 대칭으로 박혀있으며 이를 조여 착용하는 형태이다.

러브 팔찌는 일단 팔에 끼운 후 특수 제작된 스크루 드라이버로 팔찌의 나사를 조여서 착용하는 방식으로 혼자서는 착용할 수 없고 팔찌를 풀 수도 없어서 결합, 사랑의 맹세, 아름다운 구속을 의미하는 ‘러브’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나사의 모양은 원을 반으로 자른 형태로 그것의 특징을 반영해 팔찌 이름인 ‘LOVE’도 ‘LΘVE’로 표기하고 있다.

러브 팔찌는 그날의 활동이나 옷에 맞춰 선택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착용자가 부여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색다른 액세서리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까르띠에는 제품의 특성과 이름에 맞추어 출시 당시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까르띠에 뉴욕지사에서 행사를 열어 유명인 커플 25쌍을 초청했다. 이 행사에서 미국의 영화배우들인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와 리처트 버튼(Richard Burton), 캐리 그랜트(Cary Grant)와 다이언 캐넌(Dyan Cannon),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과 알리 맥그로(Ali Macgraw) 등의 커플들이 서로의 팔목에 팔찌를 채웠다.

까르띠에는 러브 팔찌의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어 다른 제품들을 선보였다. 러브 팔찌의 나사는 1978년 제작된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 시계의 베젤에 적용되었다. 까르띠에는 1979년에는 팔찌에 다이아몬드를 박았으며 1983년 ‘러브 반지’, 1984년에는 ‘러브 커프 링크스(Cuff links, 장식단추), 1985년에는 ‘러브 귀걸이’를 선보였다. 이것들은 팔찌와 함께 ‘러브’ 컬렉션이 되었으며 현재에도 다양한 버전과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다.



특수 제작된 스크루 드라이버로 착용 가능한 러브 팔                찌                                                                                                                  러브 컬렉션에 사용된 까르띠에의 나사
 

5.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리치몬드 그룹(Compagnie Financière Richemont S.A.)

리치몬드 그룹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럭셔리 그룹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산업업체(담배, 금융, 보험, 광산산업, 시계, 보석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유함)인 렘브란트 그룹(Rembrandt Group)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무역제제로 럭셔리 부문과 광산 · 투자 부문 등을 분리하면서 럭셔리 부문만을 모아 1988년에 설립했다. 리치몬드 그룹은 1997년 방돔 럭셔리 그룹을 인수하면서 몽블랑도 함께 인수했다. 현재 리치몬드 그룹은 디자인, 제조사, 유통, 판매 자회사를 통해서 프리미엄 주얼리, 시계, 가죽제품, 필기구, 의류 및 액세서리 부문의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스와치 그룹(Swatch Group)과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그룹으로 세계 시계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2) 연관 브랜드

리치몬드 그룹은 럭셔리 제품 영역에 총 19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고급 시계에 집중되어 있다. 까르띠에(Cartier), 알프레드 던힐(Alfred Dunhill), 보메 & 메르시에(Baume & Mercier),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IWC, 예거-르쿨트르(Jaeger-LeCoultre), 반 클리프 & 아펠(Van Cleef & Arpels), 피아제(Piaget),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ohne), 로저 드뷔(Roger Dubuis), 란셀(Lancel), 네타포르테(Net-a-Porter), 샹하이탕(Shanghai Tang), 제임스 퍼디 앤 손(James Purdey & Sons Limited) 등의 브랜드가 리치몬드 그룹 산하에 있다.

·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ohne)
랑에 운트 죄네는 시계 제작 장인이었던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Ferdinand Adolph Lange)가 설립한 독일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1845년 독일 작센(Saxon)주 글라슈테(Glashütte) 지역에 시계 작업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 사망 이후, 그의 아들들인 리하르트 랑에(Richard Lange)와 에밀 랑에(Emil Lange)가 회사를 이어나갔으며, 시계의 높은 완성도로 유명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으로 회사가 있는 동독지역을 소련이 점령하면서 회사 재산이 압류 당해 약 40년 동안 생산이 중단되었다. 독일 통일 후인 1990년 설립자의 증손자인 발터 랑에(Walter Lange)가 회사를 재설립해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 리치몬드 그룹에 인수되었다.

·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바쉐론 콘스탄틴은 시계 제작 장인이었던 장-마크 바쉐론(Jean-Marc Vacheron)이 설립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1755년 스위스 제네바(Geneva)에 시계 작업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19년 사업가인 프랑수아 콘스탄틴(François Constantin)을 영입해 바쉐론 콘스탄틴이 되었다. 1839년 교체 가능한 무브먼트 부품을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인 팬토그래프(Pantograph)를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기술자였던 조지-아우구스트 레쇼(Georges-Auguste Leschot)가 발명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1996년 리치몬드 그룹에 인수되었다.

· 예거-르쿨트르(Jaeger-LeCoultre)
예거-르쿨트르는 시계 제작 장인 가문에서 수공 기술을 익히던 앙트완 르쿨트르(Antoine LeCoultre)가 설립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1833년 스위스 르 상티에(Le Sentier)에 시계 작업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44년 앙트완 리쿨트르가 미크론(Micron, 1미리의 1/1000) 단위를 측정할 수 있는 밀리오노미터(Millionomètre)를 개발했고 1929년 가장 가벼운(1g) 기계식 무브먼트인 칼리버101(Calibre 101)을 개발해 유명해졌다. 1937년 시계 제조 장인인 에드몽 예거(Edmond Jaeger)가 합류하면서 예거-르쿨트르가 되었고, 2000년 리치몬드 그룹에 인수되었다.

3) 브랜드 가치

까르띠에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100)’에 선정되었다.

4)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까르띠에는 전 세계 약 125개국 이상에 진출해 있으며, 약 2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까르띠에의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는 파리, 런던, 뉴욕, 도쿄를 비롯한 서울 총 5군데에 위치해있다.

6. 브랜드 특징

1) 정교한 세공을 바탕으로 한 까르띠에 디자인

까르띠에는 설립 이래 주얼리, 시계, 액세서리 등의 부분에서 트리니티 링, 러브 팔찌, 탱크 시계, 산토스 시계 등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을 제작해왔다. 특히 팬더, 난초, 앵무새, 용, 팬더, 중국 및 인도 문화 등 다양한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독특한 스타일의 고급 주얼리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창조적이고 수공예적인 작업은 까르띠에의 장인정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까르띠에를 흉내 낸 가짜 상품들은 아무리 정교하고 완벽한 기술로 만들어도 완전히 똑같이 만들기는 힘들다고 한다.

까르띠에는 고급 주얼리 제작으로 시작한 브랜드답게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공방에서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작품을 만든다. 수많은 스케치와 사전 회의, 수정을 반복해 제품에 대한 기본적 설계를 하며, 테스트용 제품을 제작한 뒤 연마 · 광택 · 세공 과정 등을 거치고 이후 장인의 손길로 다듬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까르띠에의 모든 주얼리 제작 과정은 자연광 아래에서 진행되는데, 보석에 자연광을 쬐어야 자체의 색과 햇빛에 반사되는 색감을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까르띠에의 주얼리 제품들은 까르띠에의 모든 부서들(보석 구매부, 주얼리 디자이너, 스톤 커팅 전문가, 세팅 전문가 등)간의 협업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2) 스토리텔링 마케팅(Storytelling Marketing)

스토리텔링 마케팅(Storytelling Marketing)이란 제품 고유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까르띠에의 경우 사랑, 청혼, 그리고 결혼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1937년 영국의 왕세자인 윈저공(Duke of Windsor)이 왕위를 포기하고 이혼녀인 미국의 심슨 부인에게 청혼하면서 준 반지도 까르띠에였다. 당시 영국 왕실은 이혼녀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영국의 군주제의 고결함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이유로 윈저공의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결혼식은 프랑스에서 열렸고, 윈저공의 반지 선물은 까르띠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1969년 미국의 영화배우 리처드 버튼이 연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구입한 69.49 캐럿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도 까르띠에의 제품이었다. 까르띠에는 이처럼 시인, 왕실, 영화배우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까르띠에 제품에 대한 궁금증과 갈망을 느끼도록 하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 이로써 일반 사람들이 까르띠에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까르띠에가 가지고있는 이미지와 동격화 하도록 한다.

2013년에 진행한 장편 영화식 광고인 ‘까르띠에 데스티니(Cartier Destinée')’에서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헤어진 남녀가 다시 만나는데 남자가 다시 여자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결혼식 도중 까르띠에 매장으로 달려가 약혼 반지를 사온 후 청혼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까르띠에 [Cartier]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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